바비 존스(Bobby Jones)는 미국의 아마추어 골퍼로 1930년에 당시의 4대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오픈 챔피언십), 미국 오픈, 그리고 브리티시와 미국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모두 한 해에 우승하여 골프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입니다. 오늘은 바비 존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골퍼로서 바비 존스(Bobby Jones)
바비 존스(Bobby Jones)는 골프 코스에서 뛰어난 재능과 스포츠맨십으로 유명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 중 한 명으로서, 1902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골프를 시작했으며, 골프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10대 초반에는 이미 조지아주 최고의 젊은 골퍼 중 한 명으로 꼽혔습니다. 존스는 US 오픈 4회, 브리티시 오픈 3회, 미국 아마추어 대회 5회 등 커리어 내내 수많은 아마추어 및 프로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30년에는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꼽히는 골프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존스는 놀라운 정신적, 육체적 강인함은 물론 코스에서의 완벽한 기술과 전략으로 유명했고, 그는 숏게임의 대가였으며 정확한 어프로치 샷과 정확한 퍼팅으로 늘 경쟁자들을 앞질렀습니다. 존스는 스포츠맨십과 성실함으로 유명했고 동료 골퍼와 팬 모두에게 널리 존경받았으나,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28세에 법조인의 길을 걷기 위해 프로 골프에서 은퇴했습니다. 하지만 아마추어 골프를 계속했고 골프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 중 하나인 마스터스 토너먼트의 창설을 도왔습니다. 존스는 1971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이자 스포츠맨 중 한 명으로 그의 유산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비 존스는 골프 코스에서 놀라운 정확성과 일관성으로 유명했는데, 그는 매우 재연 가능한 스윙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샷을 날릴 수 있었으며, 그린을 읽고 거리를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 버디와 파를 많이 기록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존스는 당대의 또 다른 위대한 골퍼였던 월터 하겐과의 라이벌 관계로도 유명했는데, 하겐은 코스에서 화려한 성격과 쇼맨십으로 유명했지만 존스는 좀 더 내성적이고 집중력이 뛰어났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과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당시 골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선수의 라이벌 구도는 대단했습니다. 존스는 골프 스포츠의 혁신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을 비롯한 여러 골프 코스의 설계를 도왔으며, 골프에 혁명을 일으킨 최초의 매치 클럽 세트를 비롯해 여러 골프 장비를 발명하기도 했습니다. 존스는 골프 업적 외에도 성공적인 변호사이자 사업가이기도 했는데, 그는 여러 회사를 설립하고 수많은 이사회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애틀랜타 공항 개발에도 참여했으며 1996년 애틀랜타에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바비 존스는 선수 시절 골프 장비 회사 스팔딩의 후원을 받았는데 당시 스팔딩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새로운 소재를 제품에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바비 존스 후원 외에도 월터 하겐, 진 사라젠 등 당대 최고의 골퍼들을 후원했습니다. 이 회사는 바비 존스의 선수 시절 후원을 통해 골프 장비 업계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았으며 골프 역사에서 그 입지를 굳혔습니다.
☞ 인간으로서 바비 존스(Bobby Jones)
바비 존스(Bobby Jones)는 전설적인 골퍼일 뿐만 아니라 존경과 존경을 받는 인간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었는데, 그는 골프장 안팎에서 청렴하기로 유명했고, 속임수를 쓰거나 규칙을 어긴 적이 없었으며, 골프 게임에서 항상 페어플레이 정신을 지켰습니다. 겸손함과 스포츠맨십으로 유명했으며, 패배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칭찬하는 경우가 많았고, 골프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존스는 항상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나 관심을 받기를 원하지 않았고 인터뷰나 대중 앞에 서는 것을 자주 피했습니다. 그는 골프가 가져다주는 명성과 재산보다 골프 자체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존스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는데, 1924년 아내 메리 라이스 말론과 결혼하여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고 그는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였으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종종 골프를 쉬기도 했습니다. 존스는 총명하고 교육적인 면모로도 유명했는데, 그는 조지아 공대에서 기계 공학 학위를 취득한 후 에모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1928년 조지아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이자 사업가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기도 헸으며,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자선가이기도 했는데 애틀랜타의 인기 연례행사인 피치트리 로드 레이스의 창립을 비롯하여 평생 동안 수많은 자선 단체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골퍼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바비 존스 장학 기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존스는 골프 코스에서 금욕적이고 차분한 태도로도 유명했는데 그는 역경이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으며, 이러한 평정심과 강인한 정신력은 골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였습니다. 존스는 자신이 믿는 바를 옹호하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했는데 1925년, 그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한 규칙 위반으로 벌타를 받은 후 US 오픈에서 기권한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부당한 벌칙을 받고도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기권한 그의 결정은 그의 성실함과 인품을 증명하는 증거였습니다. 존스는 열렬한 독서광이자 사상가였으며 골프 외에도 다양한 관심사를 가졌는데 특히 철학, 역사, 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연설과 인터뷰에서 셰익스피어와 성경 등의 작품을 자주 인용했습니다. 존스는 애틀랜타 제일 장로교회에 다녔던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삶과 골프 경기에서 영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고, 골프가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인격의 시험이자 내면의 자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자선 활동 외에도 존스는 시민권 운동에도 참여했는데 그는 인종 분리 철폐와 모든 사람의 평등권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높였으며 당시 남부에 만연했던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처럼 바비 존스는 단순한 골퍼 그 이상의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목적의식을 가지고 삶을 살았던 훌륭한 인격과 원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골퍼이자 인간으로서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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